4 /5 천재니깐: 청담동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임정식 셰프의 정식당은 한식과 서양 조리법을 융합해 독특한 미식 경험을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 번쯤 ‘뭐가 이렇게 비싸지?’ 하고 지갑 사정 때문에 망설이게 되지만, 막상 들어서면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분위기 속에서 한식의 새로운 면모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반찬이라는 이름의 아뮤즈 부쉬다.
스프부터 육회가 살짝 들어간 타르트까지 다양한 구성이 빠르게 나오는데, 사실상 메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육회가 들어간 한입거리 타르트는 ‘오, 이 집이 그냥 평범한 한식을 내는 건 아니겠구나’ 하는 예감을 준다.
곧이어 나온 전채에서는 로얄 벨루가 캐비어와 함께 전갱이, 동치미가 합쳐진 요리가 인상적이었다.
간이 제법 센 편이라 와인 없이 먹으면 짠맛이나 신맛이 더 부각될 수 있겠지만, 평소 짭조름한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하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간이 센 편이니 와인 페어링을 추천해본다
완도산 전복 요리는 압력밥솥에서 한번 찐 뒤 숯 그릴에서 살짝 구워내는 과정이 독특했는데, 여기에 버터와 레몬제스트, 부추오일을 섞어 만든 베르블랑 소스가 곁들여진다.
이 소스가 정말 압권이다. 만약 이 소스에 밥을 비벼먹을 수 있다면 한 그릇 순삭일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이거 더 달라고 하면 민망할까?’ 싶을 만큼 계속 손이 가는데 코스가 이어지는 터라 참고 넘어갔을 뿐이다.
중간에 추가 요금(6만 원)을 내야 하는 모듬김밥 역시 눈길을 끌었다.
김부각과 노른자 퓨레를 기본으로, 육회, 두릅, 단새우, 한치, 백김치, 더덕, 캐비어 등이 토핑으로 곁들여져 있다.
이걸 한데 돌돌 말아 둥글게 썬 채로 베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규모 양이라 여러 입을 크게 즐기긴 어렵지만, 한입 한입 새로운 조합이 펼쳐져 입이 바쁜 기분이다.
함께 간 친구는 ‘조금씩 잘려서 나왔으면 더 먹기 편했겠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형태도 나쁘지 않았다.
두릅이 생각보다 입안에 오래 남아, 고기보다 더 인상이 강했다는 점이 좀 의외였다.
생일자가 동석해 추가로 받은 미역 빠에야는 바다 내음이 굉장히 강렬했다.
비릿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듯하지만, 오히려 이 해초 향이 풍부하게 살아 있는 덕분에 해산물 애호가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릇이 참 예쁘게 세팅되어 생일 기분을 한껏 돋웠다.
이어서 옥돔, 매생이, 홍피조개, 굴 만두가 함께 들어간 생선 요리는 이 날 먹은 메뉴 중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했다.
특히 옥돔 위에 바삭하게 튀겨 올려놓은 껍질은 ‘이건 도대체 어떻게 튀겼을까’ 싶을 만큼 바삭하고 고소했다.
메인으로는 한우 안심 스테이크와 한돈 윗목살을 하나씩 시켰다.
아카시아 피클, 동치미, 갓, 콜라비 등이 가니시로 제공되는데, 언뜻 서양식 스테이크 같지만 한식 느낌이 아주 짙게 녹아 있다.
안심은 부드럽고, 육향이 또렷해 “역시 고급 한우는 배신하지 않는구나” 싶었고, 한돈 역시 김치소스, 돼지감자 퓨레, 잎채소 등을 곁들여 마치 쌈 싸 먹듯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윗목살을 오일에서 천천히 익혔다고 하는데, 기름기는 과하지 않고 고소함은 살아 있어 씹을 때마다 육즙이 톡톡 터지는 기분이 좋았다.
국수처럼 나오는 메뉴가 사실상 방아를 활용해 제면이라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한우와 백합 육수로 국물 베이스를 잡아,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뛰어난 국물이 입맛을 확 살려준다.
이름은 국수라고 불리지만, 정통 국수라기보다는 파스타에 가까운 질감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나는 꽤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디저트 파트에서 술지게미 소르베가 시작을 알린다.
알코올 발효 맛이 강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누가 먹어도 거부감 없을정도로 부드러웠다.
다른 디저트들은 깔끔하게 마무리해주긴 했지만, 이 집의 다른 놀라운 메뉴들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그래도 전체 코스를 마무리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식당에서 알러지 유무뿐 아니라 싫어하는 음식도 미리 말하면 코스를 다르게 준비해주는 세심함은 괜찮았지만, 서비스에 대해서는 조금 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페어링을 P2로 업그레이드했는데, 전달이 제대로 안 되었는지 중간에 직원이 헷갈려하는 모습이 있었다.
또한, 동치미나 백김치 같은 재료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자세한 설명이 없이 그냥 “이건 동치미 들어간 요리에요” 정도만 말해주고 끝낸 것도 살짝 밋밋했다.
한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은 별로일 수도 있으니까, 기왕이면 “이 재료가 들어가니 싫으면 빼드릴까요?” 같은 안내가 있으면 훨씬 만족도가 올라갔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음식 간이 강한 편이다.
평소 싱겁게 먹는 사람은 살짝 자극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 방문 전에 “간을 조금 덜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좋겠다.
반면에 난 상대적으로 짭조름한 맛과 와인 페어링을 좋아하는 터라, 이 정도 간이 훨씬 생동감 있고 맛을 살려주는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미식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우수했지만, 가격이나 서비스 디테일을 고려하면 두 번 갈지는 고민이 된다.
다만 누가 “정식당 갈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묻는다면 “한식 기반으로 이렇게 재미있는 메뉴 내는 곳 많지 않으니 한번쯤 꼭 경험해 봐”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