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 고루: 사실 나에게 스테이크라는 음식은 참으로 애매한 편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밖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다, 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자만일지도 모르나 직접 만든 스테이크를 먹고 실망한 적은 없었다. 이쯤하면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고. 주변 평이 나쁘지도 않고. 구태여 스테이크 같은 요리를 밖에서 도전해본 적은 없다. 이따금 스테이크 덮밥 같은 메뉴를 먹어보긴 하지만 그것과 스테이크라는 건 삼겹살 덮밥과 삼겹살의 차이처럼 다소 극명하지 않나 싶기도 하니까.
이번 식당 역시 그런 의미에서 자주 방문하는 류의 식당은 아니다. 가격이나 분위기의 문제라기보단 메뉴 선정에 있어서 스테이크를 굳이 밖에서, 같은 이상할지도 모르는 마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방문한 것은 규카츠라는 메뉴 때문일 것이다. 어째서 확신하지 못하냐면 연인이 추천해준 식당이기 때문. 나 역시 감사히 수긍한 것은 같이 갈 식당을 열심히 생각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관심에 대한 존경 뿐만 아니라 규카츠라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스테이크와 규카츠는 분명 다르니까. 소, 라는 것 말고 비슷한 건 그다지 없는 듯 하여.
하지만 여기서 당연히 나는 스테끼를 주문했다. 우스운 반골 기질 때문인지, 신메뉴에 대한 망설임 때문인지, 혹은 다른 메뉴를 연인에게 맛보여주고 싶어서인지 그 모두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나는 규카츠로 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으나 대기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10개의 자리가 있다면 대략 3, 4개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물론 예약을 하여 방문한 터라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을지도 모른다.
내부 분위기는 살짝 애매했다. 좌석 간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니었고 테이블도 그렇게 넓다고 생각이 들진 않았다. 식사가 나왔을 때 여유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무언가 활용하기엔 애매해 팔을 올려두게 되는 정도. 메뉴가 대체로 일식풍을 띠고 있으므로 식당 분위기 역시 일본풍인 듯 하나 확 인식되는 느낌은 아니다. 특유의 불판이 없다면 그런가, 싶은 느낌. 왁자지껄한 분위기이긴 한데 또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았다. 적당한 백색소음을 들으며 잠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나온 식사는 상당히 정갈한 모습이었다. 넓은 식판에 이것저것 알차게 준비해온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역시 시선을 모조리 가져가는 건 가지런하게 놓여진 고기. 고기를 맛보기 이전에 곁들여 나온 것들부터 맛을 보았다.
소스들은 특색이 있진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실패하지 않는 맛. 흔한 칠리 소스와 흔한 데리야키 소스(명확하진 않으나 나는 그렇게 느꼈다.), 소금. 어디서나 맛 볼 수 있는 그런 양념이기에 오히려 반갑다고 해야 할지. 가끔 돈카츠 식당을 가면 난해한 소스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엔 그렇지 않아 조금 안심을 했다. 도전도 좋지만 안전한 선택지가 하나 정도 있는 것도 좋지 않은가. 그 외의 반찬들도 특색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무난한 양배추 샐러드와 익숙한 된장국. 적당히 익은 밥. 단무지가 조금 독특한 인상이었는데 살짝 매콤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특출나지 않은 친구들의 모임이라 오히려 메인 메뉴를 돋보이게 하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쯤 되면 스테이크로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타다끼라고 하나. 겉면만 익혀 내부는 거의, 어쩌면 전혀 익지 않은 상태로 나를 반겼다. 조금 불안했다. 해당 점포의 미니 화로 같은 소형 불판을 종종 사용했던 나로서는 불의 세기가 걱정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 식당의 아이덴티티일지도 모르는 이 화로가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고기를 올릴 수 밖에 없기에 연인이 시킨 규카츠와 스테이크를 동시에 올려 구웠다.
솔직히 말해, 잘 익는 느낌은 아니었다. 높은 온도에 구워낼 수 없을 뿐더러 다음 살들을 위해 회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점을 오래 구울 수 없었다. 허나 재미는 분명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원하는 굽기에 도달해볼 수 있다, 하는 흥미 요소가 나를 자극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천천히 구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단점이라면 고기가 다 들러붙는 것. 최대한 기름 부위를 문지르며 어떻게든 해보았지만 불판에 살점이 달라붙어 지저분해졌다. 첫 점부터 그랬기에 그 뒤는 뭐어. 구태여 말하진 않겠다.
그 뒤는 맛이겠지. 간단히 요약하자면, 덜 익은 고기의 맛. 잘 구워진 스테이크 특유의 감칠맛이 휘몰아치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바삭한 식감은 느낄 수 없었다. 허나 독특한 특유의 맛, 익은 듯 익지 않은 소고기의 향과 맛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것은 물론 개인 취향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리라. 달리 말하자면 그것 외에 스테이크라고 부를 만한 점은 딱히 없었다. 시즈닝이 되어 그 맛을 느낀다거나 육즙을 느낀다거나 하는 등의 것이. 양념이 없다면 고기를 씹어먹는 그정도의 느낌이네 싶었다. 물론 이 부분에선 무난한 양념이 빛을 발한다. 다소 새로운 맛이 당혹시킬 때 진정시켜주는 소스들이 좋았다.
반면 규카츠는 맛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상당히라거나 꽤 같은 말이 없어도 맛있었다. 녹아내린다,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바삭한 튀김옷과 그 고소한 맛, 그리고 적절히(보다 정확히는 살짝 열에 닿은) 구워진 살의 맛이 좋았다. 어쩔 수 없이 타국의 음식을 먹을 땐 본토와 비교하게 되는데, 규카츠를 먹어본 적이 없는 나에겐 맛있는 식사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꽤나 즐거운 경험을 했다. 맛도 괜찮고 무엇보다 그 아이덴티티. 화로를 사용한다는 점이, 맛에 있어 의외로 아쉽게 만들면서도 특출난 재미를 준다는 것이 인상 깊고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서비스도 꽤나 괜찮았다. 막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챙기진 않지만 챙겨야 할 것은 확실히 챙겨주는 모습이 좋았다. 가끔 생각나면 가볼 법한 괜찮은 식당. 재방문 의사 확실하다. 다만 규카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