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 설주: 1980년에 창업한 명동보리밥. 어언 40년이 된 보리밥 전문 식당입니다. 상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업초기에는 보리밥을 주로하는 식당이었으나 지금은 다양한 메뉴로 선택의 폭을 넓혀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식당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동보리밥집을 찾는 이유는 역시 보리밥 정식을 먹기 위함일 것입니다. 입속에서 걷돌 수 있는 보리밥에 찰기를 더해 지어낸 꽁보리밥에 네다섯 종류의 나물과 얼갈이김치, 무생채 등을 얹고 콩비지와 청국장을 더한 후 적당한 들기름과 비빔 고추장으로 비벼낸 보리밥을 먹기 위해 이 곳을 찾습니다.
보리밥집에 왔으니 보리에 대해 간단히 썰을 풀어봅니다.
보리는 동아시아 국민들의 주식인 쌀, 밀, 콩, 옥수수와 함께 세계 5대 작물에 속합니다. 보리는 동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불리는 서아시아에서 작물화 되었답니다.
잡초와 같았던 원시보리는 정주생활을 하는 인간에 의해 오랜세월 동안 인위적인 선택과 돌연변이에 의해 낟알이 점점 굵어지고 촘촘해지며 빽빽하게 자라 인류의 주된 식량자원이 되어 전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수 십 종의 보리 중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재배되는 종은 겉보리, 쌀보리, 맥주보리 3종이 주로 남한에서 경작됩니다.
보리쌀은 쌀 대용 식량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한 때 식량사정이 어려웠던 시절. 벼농사가 다 끝나는 늦은 가을이면 논이나 밭을 갈아 보리씨를 파종합니다. 보리는 추위에 강하여 얼어붙은 땅사이로 푸른싹을 내미는데 그 보리밭을 꼼꼼히 밟아줘야 그 다음해 늦은 봄에 보리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봄이 되어 보리가 팰 무렵이면 저장된 식량마저 바닥이 나 본격적인 춘궁기를 맞이합니다. 쌀은 바닥을 보이고 보리는 덜 여물었고 먹을 것이라곤 없는 들판에 봄나물을 캐 죽을 쒀 배를 채우거나, 덜 핀 청보리순으로 죽을 만들어 먹기도하고 칡뿌리에서 나오는 녹말가루로 만든 칡냉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는 등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고 견뎌야하는 그런 구차하고 궁핍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배고픈 춘궁기가 지나 보리를 수확할 때가 되어서야 보리밥으로나마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시절. 매 끼니를 꽁보리밥으로 채운 배에서는 헛방귀만 나오던 때에도 도시락 검사는 매일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담임 선생님의 주업무는 30% 이상 혼식을 하지않은 도시락을 검사하는 일이었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해주던 그런 고마운 보리도 푸대접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조들이 남긴 속담을 보면 당시의 생활모습이나 사고를 더듬어 유추할수 있는데 생각나는 보리관련 속담 두가지를 옮깁니다.
겉보리 서말이 있으면 처가살이는 안한다
보릿고개 때는 딸네집에도 가지마라
그런 보리였지만 지금은 건강식으로 자리매김하니 격세지감입니다. 보리밥집에 와서 보리와 관련하여 주저리 주저리 몇 자 적다보니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보리밥 많이 먹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